[강영식 동문: 경영공학과 박사과정 99학번]
몇 년 전 대한민국은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의 후속작인 ‘응답하라 1988’에 푹 빠졌었다. 이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1980년대의 소품과 의상, 노래는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한 아련한 추억들을 되살려 주었다. 만약 2000년대 초를 다루는 ‘응답하라 2000’이라는 새로운 드라마가 제작된다면 아이러브스쿨, 프리챌, 다음의 카페와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로 대변되는 인터넷 문화가 드라마의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999년 나는 KAIST 경영공학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경제개혁에 착수했고, ‘사이버 코리아 21’ 계획을 발표하면서 IT 산업 발전 및 인프라 투자에 힘을 쏟았다. 이러한 국가 지원 속에서 인터넷의 등장은 수많은 벤처 기업들을 탄생시켰다. 입학과 함께 EBIZ클럽이라는 인터넷 창업 동아리에 가입한 나도 처음에는 학교 공부에 집중했지만 여름 방학을 지나면서 이동형, 형용준, 이정태 등의 석박사 과정 선배들과 함께 싸이월드 창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에 싸이월드는 클럽 서비스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나 프리챌, 아이러브스쿨, 네이버, 다음 등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었다. 2000년에 개인 PIMS, 공유형 게시판, 채팅, 폴 서비스 등 커뮤니티 포털 형식을 도입하면서 싸이월드 서비스는 대대적으로 개편되었다. 그러나 네티즌들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마땅한 수익 모델이 없고 투자 받은 자금도 떨어져 가는 위기 속에서 이동형 사장은 2001년에 시작된 미니홈피 프로젝트를 통해서 클럽 중심의 싸이월드 서비스를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로 변모시켰다. 20-30대 여성 이용자들의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에 대한 이용 증가를 반영하여 미니홈피가 탄생된 것이다.
싸이월드가 SK커뮤니케이션즈에 합병된 이후에 이동형 사장은 2005년 5월부터 일본 싸이월드의 사장으로 일했다. 이동형 사장은 나에게 일본에 같이 갈 것을 제안했지만 나는 박사과정을 마치고 교수가 되는 길을 택했다. 2008년 2월에 SK커뮤니케이션즈를 퇴사한 이동형 사장은 미국에 가지 않고 일본에 간 것을 무척 후회했다. 만약 초창기 싸이월드 멤버들이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함께 했다면 페이스북을 뛰어넘는 기업이 탄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도 창업에 뛰어든 많은 사람들은 싸이월드의 도전 정신에 응답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