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희 동문: 테크노 MBA 03학번 & 곽연미 동문: 테크노 MBA 04학번]
딸기 농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
우리 부부는 2003년(박홍희), 2004년(곽연미)에 각각 테크노 MBA 과정에 입학했다. 돌이 갓 지난 첫째 딸이 있는 상태였고, 대기업에서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바쁘게 일을 하고 있을 때다. 같은 회사도 아닌데 둘 다 회사의 지원으로 2년 Full-time 과정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그만한 행운이 없었다. 회사 복귀 후에도 부장, 차장으로 회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던 우리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경북 상주로 귀농해서 지금은 딸기 농사를 짓고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귀농을 고민하던 즈음에 직장 생활과 일의 재미가 많이 줄어들었고, 새롭게 배우며 도전해야 할 목표가 보이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하루하루 단순 반복인 조직 생활에 매몰되어있다가 마흔이 넘어서야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 나의 가슴을 뛰게 할 만한 일이 많지 않았기에 어떤 일을 해야 온전한 나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농업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기회를 보다 조직 개편 시기에 회사에 휴직계를 냈다. 그리고는 이곳 딸기 작목반장을 만나 무보수에 가까운 농업 인턴(우스갯소리로 머슴살이) 생활을 시작했다. 딸기 농부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게 된 것이다. 이 소득 없는 1년의 시간이 인생 경영의 관점에서는 그리 길지 않은 초기 투자였던 것이다.
우공의 딸기정원
1년간의 배움 후 회사에 공식적으로 사표를 내고, ‘우공의 딸기정원’이라는 나만의 농장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우공’은 우직한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의미의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고사성어에서 따온 인터넷상의 나의 닉네임이기도 하다.)
‘우공의 딸기정원’은 경북 상주시 청리면에 있다. 2,700평 부지는 모두 장기 임대를 받아서 운영하고 있다. 1 ,600평의 스마트팜 딸기 재배온실, 300평의 육묘장, 150평의 카페형 체험장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연간 22톤의 딸기 가운데 3~4톤 정도는 OEM을 통해 ‘생딸기잼’으로 가공해 판매한다. 체험객은 첫해 1천 명으로 시작해 둘째 해 2천 5백 명, 올해는 5천 명이 방문했고, 2020년까지는 연간 1만 명을 유치할 계획이다. 1차(재배), 2차(가공품 생산), 3차(서비스) 산업 모든 영역에서 ‘수직적 통합(Vertical Integration)1’을 통해 운영하는 농업 형태를 흔히 ‘6차 산업2’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우공의딸기정원은 딸기를 활용한 6차 산업의 모범 사례인 셈이다.
한편, 자체 포장 기술을 개발해 ‘택배 딸기’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부드럽고 연약한 딸기는 택배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확 바꾸었다. 또한, 얼리지 않은 생딸기로만 만드는 ‘생딸기잼’을 선보이고, 깔끔한 카페와 같은 인테리어의 체험장을 도입하는 등 우리 농업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는 평도 받고 있다. 하루하루가 혁신 그 자체였다.
이런 성과가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귀농 후 4년 동안, 단 한 달의 공백도 없이 경북농민사관학교, 경북농업마이스터대학, 품목 특화대학 등을 다니며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특히, 초기 3년은 명절을 포함해서도 단 하루의 휴식도 갖지 못했다. 스타트업 CEO와 같은 삶을 살았다. 귀농을 단순히 유유자적한 삶의 정착으로 생각하고 기존 농민들과 같은 방식으로 농사를 지었다면 이런 성과는 없었을 것이다.
농부? 경영자?
나름 성공적인 농업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지금은 그 누가 묻더라도 당당히 ‘농부’라는 직업적인 자부심으로 나를 소개한다. 하지만 사실 나는 한 번도 농사에 흠뻑 빠진 지금의 모습이 내 삶의 최종적인 이미지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귀농과 농사는 긴 인생에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그러니,‘현재’ 나의 직업은 ‘농부’인 동시에 농장의 ‘경영자’이며, 농업회사법인의 ‘창업자’이다. 미래에는 벤처사업가나 프로젝트 투자자 혹은 농업 컨설턴트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몇몇 지인들과 함께 ‘굿파머스그룹’이라는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여러 플레이어들이 함께 win-win할 수 있는 ‘농업특화사업모델’을 프로젝트 단위로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실현하며 이를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APC(Agricultural Platform Company)’라는 개념을 갖고 회사를 운영해 나갈 계획이다. 파트너십의 대상은 농업인, 귀농인, 청년, 노인 등 우리 농촌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주체뿐만 아니라, 스마트팜에 관심이 많은 ICT 전문 기업, 대규모 자본과 우수한 인적 역량을 갖고 있는 대기업들도 모두 포함한다. 물론,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기술환경과 사업 형태의 변화를 꺼리는 농정 관료사회, 정책적 시혜의 대상이기만 했던 기존 농민들의 의식, 같은 업계 혹은 지역민들의 견제와 시샘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새로운 접근으로 농업을 바라보는 회사들이 속속 등장해야 농촌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청년실업, 인구 절벽, 옅어져 가는 공동체 의식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극복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존의 농업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자본력, 전문 역량, 젊은 열정이 결합될 때 우리 농촌 사회는 훨씬 더 풍요로울 것이라는 신념을 나는 가지고 있다.